은행 근저당설정비 소송 승소에 금융권 ‘안도’

은행 근저당설정비 소송 승소에 금융권 ‘안도’

입력 2012-12-06 00:00
수정 2012-12-0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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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항소하겠다” 반발

고객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이미 납부한 근저당권 설정비를 은행이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법원이 판결한 데 대해 금융권은 안도했다.

승소를 자신해왔지만 혹시나 패소한다면 수조원대의 ‘소송폭탄’과 신뢰도 저하라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대규모 원고인단을 모집해 소송에 나섰던 시민단체들은 이 판결이 대법원의 불공정 약관 판결을 뒤집은 격이라며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항소할 뜻도 밝혔다.

◇법원 “근저당권 설정비 선택권은 ‘개별약정’”

서울중앙지법 민사부의 핵심은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이 선택하도록 한 것이 고객과 은행 간의 ‘개별약정’이라는 것이다.

법원은 “약관조항 자체에 의해 인지세와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에게 무조건 부담시킨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선택권을 줘 당사자들의 교섭을 예정하고 있으므로 원고들이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부담한 것은 ‘개별약정’에 의한 것이다”고 판단했다.

고객이 설정비를 내고 더 낮은 금리에 대출을 받을지, 혹은 설정비를 내지 않고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에 대출을 받을지 선택한 것은 고객과 은행 간에 이루어진 일종의 계약에 해당하는데 이 계약이 불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법원은 고객이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부담한 경우 그 대가로 저렴한 대출금리나 중도상환수수료율 등의 혜택을 본 점을 인정했다.

특히 이번 사건 원고(대출자)측에게 반환청구권을 인정하는 경우, 은행의 설정비용 부담을 조건으로 대출금리와 중도상환수수료 혜택을 보지 못한 고객은 ‘불이익’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일단 ‘안도’

금융권은 안도했다. 혹시 패소할 경우 수조원대의 ‘소송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설정비 반환에 따른 시간적ㆍ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다만 비슷한 종류의 1심 판결이 줄줄이 예정된 만큼 아직 긴장의 끈을 놓기는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인천지법 부천지원이 비슷한 취지의 소송에서 대출자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소송의 발단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대출 표준약관 개정 명령이었다.

공정위는 고객이 근저당권 설정비 부담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기존 표준약관이 불공정하다고 보고 2008년 은행에 개정을 요구했다. 은행들은 불복해 법정싸움을 벌였으나 대법원은 지난해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시민단체들은 구 약관이 무효로 근저당권 설정비를 채권자인 은행이 내야 하므로 이미 징수한 설정비를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 측은 불공정한 약관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전 약관이 무효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맞섰다.

새 약관을 쓰도록 한 것은 고객이 설정비를 내고 대출금리를 낮출 것인지, 설정비를 내지 않고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에 대출을 받을지 선택하면서 혼란을 겪지 않도록 은행이 설정비를 내고 금리에 미리 반영하라는 취지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대법원 판결은) 공정위가 개정 표준약관을 사용토록 한 처분이 적법한지 판단한 것이므로 자동으로 이 사건 약관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이와 함께, 설정비를 내는 대신 대출금리 우대 혜택이나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혜택을 받았다면 은행들이 이득을 챙겼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부당이득’이라면 고객은 손해를 보고 은행은 이익을 봐야 하는데 금리혜택을 줬다면 은행이 이익을 챙겼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꺼지지 않은 불씨…시민단체 “항소하겠다”

이에 비해 시민단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최근 부천지원이 비슷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이후 먼저 승기를 잡은 것으로 믿어 왔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연맹 조연행 대표는 “의외의 판결이다. 어떻게 보면 (기존 약관을 불공정약관이라고 해석한) 대법 판결을 뒤집는 판결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 것을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항소하겠다. 파장과 규모가 큰 소송이므로 대법원까지 갈 것으로 이미 예상했다”고 덧붙였다.

금소연은 지금껏 5번에 걸쳐 집단소송을 제기했으며 현재 원고인단을 추가로 모집하고 있다. 6차 소송도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소비자원도 이번 판결이 키코(KIKO) 등의 금융피해 판결처럼 또 하나의 ‘금융사 편향’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금소원 조남희 대표는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 문제는 대표적인 금융 소비자의 문제”라며 “앞으로 법원의 금융소비자 인식과 시각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다른 재판부의 의미 있는 판결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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