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세수 3년 연속 구멍
지난해 국세 수입이 약 11조원 펑크 났다. 사상 최대 규모다.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1998년(8조 6000억원) 당시보다 더 많다는 점에서 충격파가 적지 않다. 재정 균형을 찾기 위해 증세 논의를 본격적으로 하든, 복지 구조조정을 하든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해 보인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원론적인 얘기로는 더 이상 국가 재정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직면했다.
기재부는 나라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의 적자 규모가 올해 33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채 남발로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일본을 답습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지금의 세수 결손 추세를 되돌리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며 “올해도 세수가 10조원 가까이 펑크 난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는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증세 논의 자체에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원론적인 해법 외에 구체적인 재원 확보 대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불편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예정된 국세 수입이 11조원 가까이 구멍이 났다는 것은 국가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원론적인 이야기 대신 공약 가계부가 실제로 가능한지 이 기회에 점검해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이 증세를 (커다란) 링거 주사에 비유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를 인하한 것은 (조그만) 유리앰플 주사 격”이라면서 “기대했던 투자·고용 확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사내유보금만 늘어난 만큼 (증세보다 부담이 덜한 법인세 인하를)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법인세를 건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은 자본소득 과세를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근로자가 봉… 근소세 15% 더 걷고, 법인세 2.7% 덜 걷었다
지난해 국세 수입이 11조원가량 구멍 난 가운데 세목별로 들여다보면 직장인들이 ‘왜 우리만 털어가냐’고 목소리를 높일 만도 하다. 경기 침체 여파로 법인세와 관세, 부가가치세 등 덩치가 큰 세목들이 줄줄이 덜 걷혔지만 근로소득세(근소세)는 예산 대비 초과 달성했다. ‘근로자가 봉’이라는 냉소가 다시 확인된 셈이다.

기획재정부가 10일 내놓은 ‘2014 회계연도 세입·세출 마감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걷어 들인 근소세는 25조 4000억원으로 예산(24조 9000원) 대비 5000억원이 늘었다. 1년 전 근소세(22조원)와 비교하면 15.5% 급증했다.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과 소득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이 3억원에서 1억 5000억원 초과로 전환되면서 세수가 더 걷힐 수밖에 없었다. 또 근로자 임금이 소폭이나마 올랐고 지난해 취업자 수가 예년보다 12만명가량 증가한 것도 세수가 늘어난 배경으로 꼽힌다.
노형욱 재정업무관리관은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 조정으로 1000억원 정도 더 걷힌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4년 연속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올해도 ‘근소세 강세 현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명목 임금 상승 등의 자연 증가분과 2013년 세법개정안의 효과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기 부진과 기업실적 악화로 법인세는 예산(46조원)보다 3조 3000억원이 덜 걷힌 42조 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43조 9000원)보다 2.7% 하락했다.
지난해 법인세의 기준이 되는 2013년의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법인들의 세전이익은 51조 4000억원으로 1년(57조 2000억원) 전보다 10.2% 감소했다. 기재부 측은 “법인세율의 변화가 없는 만큼 기업들의 수익 구조가 나빠진 것이 법인세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내수 부진과 환율 하락은 관세와 부가가치세에서도 1조원 이상 ‘펑크’를 가져왔다.
관세는 1조 9000억원, 부가세는 1조 4000억원가량 덜 걷혔다. 금리 하락으로 이자소득세도 예산 대비 1조원 정도 부족했고, 증권거래세도 주식거래 부진 탓에 9000억원가량 덜 걷혔다. 다만 지난해 부동산 규제 완화와 금리 하락으로 부동산 거래 건수가 크게 늘면서 양도소득세는 1조 1000억원이 더 걷혔다. 지난해 부동산 거래 건수는 540만 7000건으로 전년 대비 19.9% 급증했다.
세수 규모별로는 부가세(57조 1000억원)와 소득세(종합·근로·양도·이자 소득세, 53조 3000억원), 법인세 순이다. 지난해 소득세는 예산보다 1조 1000억원가량 덜 걷혔지만 전년(47조 8000억원) 대비로는 5조 5000억원 증가했다. 올해도 경기 부진이 이어진다면 소득세 규모가 부가세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득세수가 다른 세목에 비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자연 증가뿐 아니라 경기 변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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