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 가는 키워드 ‘금기’

어른으로 가는 키워드 ‘금기’

입력 2010-03-20 00:00
수정 2010-03-20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최인석 첫 청소년 장편소설 ‘약탈이 시작됐다’

어쩌다 이리도 지독한 사랑에 빠졌을까. 그 사랑은 이제 갓 열 일곱 살 먹은, 어른과 소년의 경계에 있는 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혹독하기만 하다. 담임 선생님을 사랑해 버린 소녀, 친구의 어머니에 뜨거운 욕망을 품은 소년이라니.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금기와 제약 속에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도, 따가운 시선 속에 사랑을 지켜내는 것도, 사랑이 떠난 뒤편의 상처와 고통조차 사랑의 한 부분으로 껴안아야 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몫이다.

이미지 확대
그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다.

중견 작가 최인석(57)의 첫 청소년 장편소설 ‘약탈이 시작됐다’(창비 펴냄)는 금지된, 그래서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는 사랑과 그에 수반되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청소년들이 겪는 성장 의례를 그리고 있다.

●소년과 어른사이 청소년이 겪는 성장의례

작품 속에서 주된 화자 성준은 담임 봉석의 심부름으로 장기 결석 중인 같은 반 용태의 집을 찾아간다. 거기에서 용태 어머니, 금선의 벗은 뒷모습 그리고 지친 얼굴에서 욕망과 연민의 뒤섞임을 느낀다. 성준이 한때 좋아했던 윤지는 원조교제라는 오명을 고스란히 뒤집어쓰면서도 담임 봉석과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금기시된 욕망과 자유로운 본성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이다. 그리고 ‘종각 앞 약탈 지역’에서 벌어졌다 스러지곤하는 약탈은 이들의 불안과 외로움, 고통스러움 사이마다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키며 이어진다. 약탈 지역은 청소년을 성장시키는 촉매이자, 이미 성장한 어른들이 벌이는 선악이 뒤엉킨 판타지의 공간이다.

‘약탈이’는 모범적으로 갈등하고, 계몽적으로 끝나는 청소년 소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렇다고 청소년 세대를 위선적인 어른 또는 기성세대와 대립하는 주체, 혹은 미래의 희망을 실현할 주체로서 추어올리지도 않는다. 선악의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날것의 어른들이 등장하고, 날것의 청소년들이 삶과 사랑을 둘러싼 관계에 의문을 품는다. 때로는 환상문학의 풍자와 알레고리를 빌려서, 때로는 지독할 만큼 이들의 삶에 천착해 그려진다.

그들에게 약탈 지역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대결로 상징되는,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어른들의 세계다. 근엄함과 도덕으로 스스로를 포장한 어른들이 밤이면 얼굴을 바꿔 무시로 들락거리는 곳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는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물론, 엿보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에게 약탈 지역은 일탈의 해방구이거나,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와 같은 곳이다.

●일탈의 해방구 혹은 어른세계로 가는 통로

성준의 친구, 용태가 그 지역을 접하고 온 뒤 훌쩍 커버려서 어른의 세계로 편입돼 자신의 삶을 꾸리기 시작한 것은 필연적 선택이다. 주인공 성준 역시 금기시된 사랑에서 좌절의 통각을 깊이 느끼고 ‘약탈을 시작하기 위해’ 약탈 지역으로 뛰어든다.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날것의 세상과 대면해야 하는, 또 다른 어른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청소년은 그렇게 서서히, 혹은 급격히 어른이 되어간다.

최인석은 “중·고등학교 시절은 고통스러웠다. 온갖 의문이 들었지만 학교에서는 나의 의문에 대해 한 마디도 답해주지 않은 채 온갖 쓸데없는 규율을 강제하기만 했다.”면서 “당시 품었던 의문에 대한 현명한 답이 없다는 것은 참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아직 답을 찾고 있다는 말로 위안을 삼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0-03-20 2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1 /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