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실무협상 합의서에 담긴 남북 속내 및 전망
개성공단 실무회담에 임하는 남북의 셈법이 달랐는데도 7일 개성공단 재가동 원칙을 담은 합의서가 도출될 수 있었던 것은 남북 양측이 처한 절박한 상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정부는 지난달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이후 한동안 “개성공단 문제 역시 남북 관계의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속도 조절론’을 폈다. 그러나 기계·설비에 위협적인 장마철에 접어들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불만이 폭발하자 정부 내에서도 시급히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계·전자 업체들은 지난 3일 “정부가 개성공단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설비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사실상 공단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123개 기업 가운데 37% 이상을 차지하는 기계·설비 업체가 철수하면 개성공단의 존립도 위태로워진다는 점에서 정부의 중압감도 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개성공단 재가동에 앞서 재발 방지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실무회담에서는 적절한 절충안을 찾아 개성공단의 불씨를 살리는 데 주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양측이 재가동에 합의했지만 갈 길은 험난하다. 특히 합의문 4항의 ‘남과 북은 준비되는 데 따라 재가동하도록 한다’는 조항이 향후 걸림돌이다. 통일부 측은 “재발 방지책이 마련되는 등 조건과 여건이 조성돼야 하는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이지만 북측은 ‘설비 점검을 마친 직후’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측은 ‘국제적 규범에 부합하는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어 북한의 조기 가동과는 목표가 다르다는 분석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에 얼마나 성의 있게 나오느냐에 따라 (재가동)시점도 당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회담 초반부터 개성공단의 조기 재가동에 모든 것을 걸었다. 우리 측이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문제를 먼저 꺼낸 반면, 북한은 개성공단 장마철 피해 대책과 관련 기업들의 설비 점검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협의해 나가자고 제의했다. 또 개성공단 정상화와 관련해 “가동할 수 있는 공장부터 운영하자”며 조급한 속내를 드러냈다.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5만여명의 실직에 따른 재정적 타격도 문제지만 북·미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과 중국 등이 요구한 대로 서둘러 남북 관계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남북 관계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실무회담 초반 “완제품은 반출 가능하나 원부자재는 재가동을 염두에 두고 불필요하게 반출하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 우리 측 요구를 수용해 원부자재 반출에도 협조키로 했다.
회담 관계자는 “사실상 북측이 남측에서 요구한 내용을 대부분 수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2013-07-0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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