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술 혁명-다가온 미래학교] <상> 싱가포르 실험 학교 난치아우 초등학교에 가 보니

[IT기술 혁명-다가온 미래학교] <상> 싱가포르 실험 학교 난치아우 초등학교에 가 보니

입력 2014-04-29 00:00
수정 2014-04-29 02:27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학교·집·공원… 실생활이 학습 공간

올해부터 초·중학교에서, 내년부터 고등학교에서 디지털교과서를 전면 활용하겠다던 정부의 계획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2011년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을 발표했지만 예산 확보부터 여의치 않다. 우리가 주춤한 사이 해외 각국에서는 ‘미래교육’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쌍방향 수업, 과목별·학교급별 칸막이가 무의미해진 수업이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신문이 3회에 걸쳐 국내외 미래교육의 현장을 전하고, 우리 교육의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이미지 확대
싱가포르 미래학교인 난치아우 초등학교의 3학년 E반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교사 하자르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 미래학교인 난치아우 초등학교의 3학년 E반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교사 하자르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2분 남았어요. 이제 의견을 내주세요.”

싱가포르 앵커베일 링크에 자리한 난치아우 초등학교. 지난 22일 기자가 찾은 3학년 E반에서는 곰팡이의 번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칠판에는 ‘곰팡이의 번식 원인은?’이라는 질문이 적혀 있었다. 칠판 오른쪽으로 내려온 스크린에는 검은 곰팡이가 핀 빵 사진이 보였다. 스크린 중간에 있는 스톱워치가 30초를 가리켰다. 교사 하자르의 재촉이 이어졌다. 학생 40여명의 손놀림도 빨라졌다. 학생들이 휴대전화로 답을 전송하자 ‘ROOM 71032’라고 적힌 온라인 게시판에 학생들의 이름과 답변이 차례로 뜨기 시작했다. ‘물’이라고 적은 학생도 있었고 ‘설탕’이라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 ‘습도가 높은 공기’라는 답도 나왔다. 기자 옆의 벨라가 스크린에 떠 있는 곰팡이 핀 빵의 사진을 가리키며 “제가 찍은 사진이에요”라고 자랑했다.

이 학교 3학년 학생들은 1년 동안 과학 수업에서 ▲생물과 사체 ▲동물 ▲곰팡이 ▲박테리아 ▲물질 ▲식물 ▲소화기관 ▲다른 기관 등 8개의 주제를 배운다. 학생들은 퀄컴사에서 후원받은 노키아 휴대전화를 1대씩 가지고 다닌다. 교사가 숙제를 내주면 학생들은 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동물원, 공원, 공장, 집, 학교 등에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어 수업 하루 전 교사에게 보낸다. 교사는 이 중 가장 적합한 것을 골라 교실에서 자료로 활용한다. 수업은 주로 토론식으로 진행된다. 교사가 문제를 내면 학생들은 4명씩 팀을 만들어 정해진 시간 동안 의견을 나누고 토론한 후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답변을 휴대전화로 적어 보낸다. 교사는 정답을 공개하고 왜 이런 답이 나오는지 설명한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나뭇가지 모양의 ‘IT 맵’을 그리고 KWL(Know-Wonder-Learning) 리포트를 작성한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의 몸이 뼈로 구성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Know)-‘뼈의 개수는 몇 개인지 궁금하다’(Wonder)-‘사람의 뼈는 모두 206개다’(Learning) 하는 식이다.

난치아우 초등학교는 이런 수업을 2009년부터 해 오고 있다. 교내 3층에는 수업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CERA가 있다. 싱가포르 교육부 직원과 퀄컴 직원, 교사 등 9명이 상주하며 수업만 연구한다. 수업에 대한 총괄 책임을 맡은 제니 리 IT 서브젝트 부서장은 “IT 맵은 자신이 알게 된 지식을 나무줄기처럼 이어 그린 일종의 ‘개념지도’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떤 것들을 배워야 할지를 알게 해 주는 KWL과 함께 학생들은 스스로 배우고 익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리 부서장은 “학생들은 학교뿐 아니라 집과 공공장소 등 자신의 실제 생활에서 스스로 공부한다. 실생활에서 배우면 학습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는다. 학생이 주체가 되는 이른바 ‘자기주도적 수업’인 셈이다. 이번 취재에 동행한 조기성 계성초등학교 교사는 “한국에서도 이런 수업이 진행되지만 실험적으로, 간헐적으로 진행된다”며 “모든 수업 시간이 이렇게 진행된다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난치아우 초등학교는 싱가포르가 2008년부터 선정 중인 미래학교(FutureSchools@Singapore) 8곳 중 하나다. 2011년 미래학교로 선정된 이 학교는 공립초등학교지만 중국 동문들의 막대한 후원과 퀄컴, 마이크로소프트사 등의 지원을 받아 각종 실험을 해 오고 있다. 특히 이 학교는 초등학교 졸업 후 치르는 PSLE(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에서 상위권을 기록하는 학교로도 유명하다. 싱가포르의 230개 초등학교 중에서도 매년 10위권에 든다는 게 이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다.

싱가포르 공교육의 특징은 ‘가지치기’로 불린다. 초등학교 때부터 능력에 따라 우열반 수업을 하고 졸업시험을 치르면서 성적에 따라 상급 학교에 진학한다. PSLE는 이 중 첫 관문에 해당하는 시험으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다’고 할 만큼 중요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95% 이상이 중학교에 입학하지만 이 시험 성적에 따라 4년짜리 속성과정(Express)과 5년짜리 일반과정(Normal)으로 학교가 나뉘기 때문이다.

2010년 미래학교로 선정된 싱가포르 테크놀로지 드라이브에 자리한 SST(과학기술학교)는 PSLE 전에 학생을 선발하는 4년제 사립 중학교다. 2008년 타르만 당시 교육부 장관이 “디자인, 미디어, 기술 등을 가르치는 특성화 학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설립됐다. 니안 폴리테크닉대를 운영하는 니안 재단의 재정 지원으로 2009년 설립된 후 2년 만에 미래학교로 선정됐다. 매년 200명을 선발하는데, 1000명 이상이 응시한다. 졸업시험 후 25% 정도만 진학할 수 있는 인문계 고교인 주니어칼리지에 1회 졸업생이 전원 진학하면서 주목받는 학교로 부상했다.

SST의 특징으로는 문제기반학습(PBL)과 예술·디자인·미디어·기술(ADMT) 특성화 수업을 꼽을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SST에서는 애플사의 노트북인 맥북을 지닌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이 학교의 ‘내추럴 피트’(natural fit)와 ‘1인 1기기’ 정책에 따라 맥북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이 밖에 애플과 구글의 각종 프로그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도 능숙하다. 학교 내에 구글과 애플에서 보낸 트레이너가 상주하면서 학생들의 소프트웨어 활용을 돕는다. 추림 웨이 리 교감은 “학생들이 최첨단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배우고 각종 과학 경시대회에 도전하고 있다”며 “설립 4년 만에 수십 명이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처럼 학생들이 4년 동안 연구과제를 정하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학교 1, 2층에 자리한 물리, 화학, 바이오, 미디어 등 10개의 과학 연구실은 여느 대학에 버금갈 정도다.

하지만 이 학교가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교사들의 역량이다. 총 학생 정원이 800명인 이 학교의 교사는 80명에 이른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10명에 불과한 셈이다. 특히 교사들은 행정업무 부담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수업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만 한다. 교직원 31명이 학교 행정이나 기술 상담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리 교감은 “우수한 시설과 우수한 학생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역량 역시 제일 중요하다”며 “첨단기술을 가르치는 학교이기 때문에 가급적 젊고 유능한 교사들을 선발했다. 이 교사진이 바로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싱가포르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4-04-29 2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