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배려는 없었다…재판 절차 따져 성희롱범 무죄

피해자 배려는 없었다…재판 절차 따져 성희롱범 무죄

입력 2015-06-01 08:51
수정 2015-06-0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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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성희롱 30대 항소심서 풀려나…”법조문만 매달려” 비판

10대 소녀를 집앞까지 따라가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성희롱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30대 남성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나와 경찰에서 한 진술을 확인하도록 구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이 법정에서 다시 피고인을 대면하기를 꺼리는 나이 어린 피해자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법리에만 충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모(32)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윤씨는 2013년 7월 집에 가던 중학생 A양을 발견하고 집앞까지 따라갔다.

그는 A양의 집 앞에서 자신의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성기를 만지며 “너희 집 알았으니 다음에 또 보자”고 말했다. 윤씨는 2013년 5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고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또다시 재판에 넘겨진 윤씨에게 1심 법원은 징역 6개월의 실형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했다.

집행유예 기간에 동종범죄를 저질렀으면서도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는 점 등이 고려됐다.

1심은 A양에게 수차례 증인 출석을 부탁했지만 절대 응하지 않겠다고 하자, 피해자의 나이와 피해 내용 등을 고려할 때 법정 진술을 위해 구인절차까지 거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경찰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형소법 314조에 따르면 진술조서는 작성자가 법정에서 자신이 작성했다고 진술해야만 증거로 사용할 수 있지만, 사망이나 질병, 소재불명 등에 준하는 사유로 진술을 할 수 없으면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그러나 2심은 구인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형소법의 예외적 사유에 해당하려면 진술자가 사망 혹은 기억상실 상태이거나, 법정에서 증언거부권을 행사한 경우, 증인 소환에 응하지 않아 구인을 명했으나 끝내 구인이 집행되지 않은 경우 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심은 피해자가 학업이나 불안감 등을 이유로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는데도 검찰은 물론 1심 법원도 구인절차를 밟지 않았다며 예외적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A양의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도 이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김보람 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나이 어린 피해자의 법정 증언으로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법원이 법조문만 지나치게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해석했다”며 “아쉬움이 남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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