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승부차기 4-5 패… 4강행 무산
30년 만의 준결승행을 노리던 어린 태극전사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쫀쫀한 팀워크와 근성, 투지로 뭉친 꿈나무들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쓰기에 충분했다.
카이세리 연합뉴스
졌지만 후회 없었던 한판
‘너희들, 정말 아름다운 패자야.’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8일 터키 카이세리의 카디르 하스 스타디움에서 끝난 이라크와의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전을 승부차기 끝에 석패한 뒤 열렬히 응원해준 교민들에게 손뼉을 치며 답례하는 모습을 이광종(오른쪽) 감독이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카이세리 연합뉴스
카이세리 연합뉴스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8일 터키 카이세리의 카디르 하스스타디움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전에서 이라크에 밀려 4강 합류가 무산됐다. 연장까지 120분 동안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4-5로 패했다.
시나리오였으면 너무 작위적이라는 혹평을 받았을 만큼 드라마틱한 경기였다. 내내 엎치락뒤치락, 쫓고 쫓기는 명승부였다. 전반 21분 알리 파에즈에게 페널티킥으로 첫 골을 얻어맞은 한국은 4분 뒤 권창훈(수원)이 헤딩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이라크가 전반 42분 파르한 샤코르의 추가골로 도망가자 이광훈(포항)이 후반 5분 머리로 2-2를 만들었다. 이어진 연장전. 체력도, 집중력도 떨어진 연장 후반 13분 샤코르에게 한 골을 내줘 패색이 짙었지만, 정현철(동국대)이 추가시간도 끝날 무렵 중거리슛으로 원점을 만들었다.
120분 접전 끝에 이어진 승부차기. 한국은 2번째 키커 연제민(수원)의 공이 크로스바를 벗어났고, 6번째 키커 이광훈의 슈팅은 골키퍼 선방에 막히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콜롬비아와의 16강전과 달리 이번 승부차기는 ‘새드엔딩’이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굵은 눈물을 뚝뚝 쏟았다.
아쉽지만 후회 없는 한판이었다. 이 감독은 ‘신들린 용병술’을 뽐냈다. 교체로 투입된 이광훈이 투입 5분 만에, 연장전에 들어간 정현철이 첫 볼터치에서 거짓말처럼 골을 뽑았다. 예민하게 경기의 흐름을 읽은데다 선수에 대한 현미경 분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이광종호’는 또 A대표팀의 모토인 ‘원팀’(one team)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 감독이 “주위에서 약체라고 평가했지만 선수단 전체가 한마음으로 온 힘을 다한 덕분에 세계적인 팀들과 대적할 수 있었다”고 말한 데서 보듯 돋보이는 스타는 없었지만 끈끈한 팀워크로 매 경기 드라마를 썼다. 대회 최종엔트리(21명) 중 16명은 지난해 아시아 U-19 선수권대회 우승멤버. 선수단은 프로와 아마추어(대학)로 소속도, 생활 패턴도 달랐지만 한 목표를 향해 꾸준히 발을 맞췄다. 강한 압박과 유기적인 협력수비를 자랑하는 태극호 앞에 강호 포르투갈도, 우승후보 콜롬비아도 쓰러졌다. 두 경기 연속골을 터뜨린 해결사 류승우(중앙대)가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공백을 메웠고, 거듭된 연장·승부차기에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면서도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언제부턴가 한국 축구에서 사라져버린 투혼과 근성을 보여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이들 원석을 보석으로 다듬는 게 과제다. 4년 전 이집트대회에서 ‘8강 신화’를 쓴 구자철·김보경·윤석영·홍정호 등 ‘홍명보의 아이들’도 2010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2런던올림픽을 차곡차곡 밟으며 ‘황금세대’로 거듭나 A대표팀에 연착륙했다. 세계 축구팬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은 ‘이광종의 아이들’도 내년 인천아시안게임과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역사를 쓸 채비를 마쳤다.
한편 가나는 이날 난타전 끝에 칠레를 4-3으로 꺾고 대회 준결승에 올랐다. 이로써 4강은 프랑스-가나(11일 0시), 이라크-우루과이(11일 오전 3시)의 대결로 압축됐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2013-07-09 2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