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키델스키·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부키/376쪽/1만 6000원
영국의 금융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 발표한 에세이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이렇게 아름답게 전망했다. ‘자본과 기술이 성장해 2030년쯤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 15시간 노동만으로도 충분히 잘 먹고살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이 도래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그 전망은 철저히 빗나갔다. 경쟁은 더 심해지고 일자리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슨 헛소리’냐는 반박에 묻혀 버리기 일쑤인 것이다. 케인스의 예언은 왜 빗나갔을까, 그리고 그 전망은 정녕 실현될 수 없는 것일까.‘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는 케인스의 ‘빗나간 전망’을 샅샅이 파헤쳐 대안을 제시한 이론서로 눈길을 끈다. 공저자인 스키델스키 부자는 케인스의 전망이 자본과 기술 성장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적중했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전망과 달리 갈수록 어려워지는 생활이 어디에서 비롯됐는가에 주목한다. 공저자들이 찾아낸 원인은 바로 생산성 증가에 따른 이익을 노동자들이 갖지 못하게 됐다는 데 있다. 이른바 자본주의가 심어 놓은 습관 때문이다. 자유시장 경제는 고용주들에게 노동시간과 노동조건을 좌지우지할 힘을 주며 우월감을 맛보기 위해 경쟁적으로 소비하고 싶어 하는 우리 내면의 성향에 불을 활활 지른다는 것이다.
동서양의 지성사는 물론 ‘행복 경제학’ 같은 최근의 대안 이론까지 들춰낸 저자들은 “아테네와 로마에는 경제적으로 생산성이 낮더라도 정치, 철학, 문학 분야에서 최고 수준으로 왕성한 시민들이 있었다. 왜 그러한 시민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지 않고 일만 하는 당나귀를 지침으로 삼는가”라고 묻는다. 물질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성장한 만큼 이제는 좋은 삶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역설인 셈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 때 오늘날 같은 자본주의 숭배 현상은 상당히 예외적이라고 분석한 저자들은 정치적으로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좋은 삶과 좋은 사회라는 이념을 중심부의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좋은 삶을 위한 대안적인 7가지 기본재는 바로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로 압축된다. 주당 노동시간 제한과 일자리 나누기며 누진 소비세 도입과 광고 제한에 얹어 세계화의 속도조절, 자본 도피와 핫머니 통제 등의 대책이 제시된다.
결국 저자들은 책 말미를 이렇게 매듭짓는다. “이제 정책과 사회공동의 목표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기본재를 사람들이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경제구조를 만드는 데 둬야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3-06-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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